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4년 가까이 준비해왔던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출마를 위한 활동을 이 시점에서 중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년 녹색운동 동료와 한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제가 살아온 가치와 다르며, 제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녹색운동가이며, 시민운동가입니다. 저는 1990년 녹색연합을 만들던 시기부터 2011년 사무처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저의 뿌리는 녹색운동가, 시민운동가임을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비록 녹색연합 활동을 마무리하고 2012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그 또한 탈핵사회 실현, 4대강 재자연화, 그리고 시민들의 행복과 안전이 가장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하며, 지역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짧은 시간이지만 정치활동을 하면서 우선 순위를 두었던 것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조직기획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후보 시민캠프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제가 역점을 두었던 일 또한 시민주도의 시민정치였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은평지역 분들과 함께 은평시민정치네트워크를 만들어 시민주도의 생활정치를 제대로 해 보고자 노력하였으며,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 핵과 방사능의 공포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따라서 저의 정치 진로 또한 정치논리와 이해관계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기준에서 판단되어야 하며, 그 기준을 벗어난다면 제가 국회의원이 되던, 더 큰 역할을 하던 최승국 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며, 초심을 벗어난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정치는 제가 청춘을 다 바쳐 활동했던 시민사회의 가치를 정치에 반영하는 시민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보기에 따라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저와 녹색운동,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사안입니다.


제가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구인 ‘은평 을’에 저와 20여년 녹색연합 동지이자 선배인 김제남 의원께서 정의당 지역위원장 겸 총선 후보로 결정된 것입니다.


녹색연합을 포함한 시민운동진영에서 직간접으로 후보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최근 반달동안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 최승국과 김제남 두 사람이 같은 지역구에서 내년 총선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녹색연합과 시민운동에 부담을 주는 것이며, 중요한 계기마다 분열로 패배한 진보진영의 일부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다르다는 것과 당선 가능성 여부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제가 국회에 들어가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은평의 정치를 근본에서부터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 결단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과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여기서 구구절절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저 최승국은 오늘(5월 20일)부로 은평을 지역에서의 총선 준비를 위한 모든 과정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지해 주시고 함께 고민을 나누어주신 분들이 많은데 일일이 상의 드리지 못하고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비록 총선 준비는 내려놓지만 은평지역의 발전과 시민주도의 시민정치를 위한 저의 노력은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은평지역이 협동의 도시,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 정치가 시민들을 위해 즐겁게 봉사하는 도시가 되도록 제 힘 닿는데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고,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마음을 내어주신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지난 4년동안 중앙이 아닌, 은평지역 주민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5월 20일 은평에서. 최승국 두손모아

Posted by 최승국

- 2012년, 진보진영 무엇을 할 것인가

 

 

■ 대한민국 진보의 자화상

o 민주통합당에서 민주진보진영의 희망을 볼 수 없다.

4.11총선은 민주당이 압도적 승리를 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총선 참패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민주당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민주당의 패배는 의외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혁신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으며, 공천을 비롯한 총선과정에서 어떤 감동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총선 패배에 따라붙는 평가는 ‘다 차려놓은 밥상도 걷어찼다’는 것이며, 결국 한번 걷어찬 밥상을 이번 대선에서 다시 차려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총선에서 민심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은 내용이야 어떻든 형식상 보여지는 면에서는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이 더 개혁적이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꾸고 비대위를 구성하고 개혁적 슬로건을 내거는 등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상당히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큰 문제는 총선이 끝난 이후의 모습이다. 민주당은 총선 패배 이후에도 국민들의 변화의 욕망을 수렴하지 못함으로써 지지율의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고, 수권정당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2부 리그’로 전락하여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태로라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의 승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o 진보정치의 몰락을 자초하는 통합진보당 사태

진보정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진보진영이 뭉쳐서 통합진보당을 만들고 총선에서 10% 지지율을 보이며 원내 3당의 위치를 차지할 때만해도 진보정치의 부흥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곧이어 터진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건으로 통합진보당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고 이는 곧 진보정치의 몰락으로 이어질 위기를 의미한다.

진보정치의 몰락은 구 민주노동당에서 촉발된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종북주의가 현 시기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위한 논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간에서 “길거리에 던져두면 개도 안 물어갈 종북주의 논쟁”라고 이야기되듯 현 시점에서 종북주의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종북주의 논쟁의 뿌리는 80년대 운동권의 이념적 근거인 NL과 PD에 두고 있다. 하지만 언제적 논쟁인가? 아직도 NL, PD가 존재하는가?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80년대에 살고 있는 것이며, 역사발전을 저해하는 사람들이다.

통합진보당의 위기 한 가운데 이석기씨가 있다. 이석기로 대표되는 특정 정파를 위해 당을 버렸고 이는 국민들로부터 진보정당이 버림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민의 뜻이나 당보다 우위에 있는 정파주의는 결코 민심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지금도 통합진보당은 구당권파와 신당권파로 나누어 서로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두 정파가 서로 비난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구 당권파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당권파 또한 당의 통합보다 정파의 입장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 부결 파동에서 보여준 신당권파의 모습 그 어디에도 제정파의 통합을 통해 당을 살려보겠다는 모습을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통합진보당내의 제 세력은 구성원간의 통합을 통한 진보정치 실현 의지가 애초부터 높지 않았으며, 더욱이 국민 눈높이를 바라보는 정치를 할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o 박원순과 안철수 효과로 드러난 진보의 한계와 과제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박원순과 안철수 효과는 정치변화를 바라는 강한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낼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시민의식은 엄청나게 성장하였고 이들은 정치의 변화를 요구했지만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기존 정치권의 관행에 묻혀 있었다. 또한 야권의 지도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결국 안철수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현재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에 필요했던 리더십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시대와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치와 지도자를 원한다. 그럼에도 이를 담아낼 그릇이 여전히 없다. 때문에 국민들은 안철수 현상에 열광하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개인의 현상이 아니라 시대현상이며, 이를 정치권에서 수렴하지 못하면 민주/진보 정당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금년 대선승리도 어렵게 될 것이다.

 

o 시민운동과 진보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운동의 전성기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진보진영은 각 분야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이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시민운동이었다. 시민운동의 급성장은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의 성과가 밑거름이 되었으며, 시민운동의 성장은 반대급부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 재야운동의 일정한 약화를 가져온다.

진보 가치를 가진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연대를 정점으로 일정한 정체기를 맞게 되고 뉴라이트라는 보수성향의 시민운동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2000년 총선연대 활동에 놀란 보수진영이 조직적 견제와 반격에 나서게 됨으로서 시작되었으며, 민주정부 수립이후 사회적 요구 자체가 변화한 것도 시민운동 진영의 영향력 축소와 무관하지 않다.

진보성향의 시민운동은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계를 보이면서, 새로운 모색기에 접어든다. 특히 활발한 SNS 활동과 진보 의제의 정치권 수렴 등으로 시민운동은 이전 같은 사회적 변화의 중심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이명박 정부의 시민운동 탄압정책도 시민운동 진영의 약화를 부추기게 된다. 이에 시민사회진영은 ‘시민정치운동’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으나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운동도 이제 지난 20년의 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이다. 더 이상 이슈 주창형 운동에 머물지 않고 시민의 뜻에 따라 활동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 진보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o 아직도 보수와 진보의 기준을 자본주의(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구분하나

해방이후 한국(남한)의 진보진영이 사회주의 또는 주체사상을 이념적 근거로 했던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많은 부분이 사회주의 세력에 의해 진행되었고, 남북분단 과정에서 남측은 친일파가 여전히 득세하는 반면 북측은 나름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는 독립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 이후 적어도 1970년대 초기까지는 상대적으로 북측이 남측보다 안정된 사회를 유지했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위를 유지하였다. 여기에 남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외세의 힘도 실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세로부터 벗어나고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이룩함은 물론 계급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운동, 즉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론이 1980년대 당시 진보성향의 운동권의 주류 이념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측과 연대하여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북측은 구성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 문제가 엄청 심각한 지금 상황에도 전세계 어디를 가도 사회주의 체제가 더 우수한 체제라고 입증할 대상이 없다. 유럽에서 집권 경험이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근거로 한 사민당이나 노동당도 한국사회 운동권이 80년대 따라배웠던 프롤레타리아트 일당독재에 기반한 사회주의 이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것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시대가 변했고 진보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o 전통방식의 진보가 사회전반의 발전을 가져왔나?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기존의 진보운동이 사회전반의 바람직한 발전을 가져 왔는가이다. 생명운동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반생태적이며 지독히 인간중심의 체제이다.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경제성장을 통한 부국강병만 주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할 것 없이 경제성장의 이면에 엄청난 사회갈등과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극심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사회 양극화 등이 그것이며, 이는 기존의 진보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통일문제는 또 어떠한가? 진보진영은 통일문제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 방안은 진정 통일의 길을 앞당기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가?

정치권이 목을 매고 있는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향상이 구성원들의 행복으로 직결되는지도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 남은 풀 한포기가 말라죽고, 마지막 물고기 한 마리마저 사라졌을 때 그때야 비로소 인간은 금화를 씹어먹고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던 어느 인디언 추장의 말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o 이제 보수와 진보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진정한 진보는 무엇인가? 나는 진보의 조건을 다음과 같은 네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 대립이 아니라 통합(화합)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진보이다. 둘째, 구성원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보이다. 셋째,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보이다. 넷째,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진보된 사회이다. 얼핏보면 당연한 말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이같은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자.

 

 

■ 2012년,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하나?

o 사회양극화 극복이 우선 과제이다.

20대 80 사회, 또는 1%와 99% 대립이라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진보진영, 아니 우리 사회 모두의 우선 과제이다. 양극화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이다. 전체 일자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양극화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지금 대학문을 나서는 청년들 대부분은 곧바로 실업자가 된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양극화의 고착화를 막는 길이며, 우리사회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부양해야할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고 하면서도 정작 일할 수 있는 노인들을 잉여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으면 당연히 일할 수 있는 나이도 길어지게 마련이다. 이에 맞게 정년이 조정되어야 하며, 사회비용 증가를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등 사회 시스템이 재편되어야 한다.

 

o 교육문제의 근본 해법이 필요하다.

교육문제의 근본 해법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유럽 선진 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40%대인 반면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를 웃돌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과 한국, 어느 사회가 더 행복하며, 미래지향적인가? 사교육 없는 사회니, 대학 제도 개선이니 하며 정치권에서 매년 호들갑을 떨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고 서민들의 허리는 점점 휘어지고 대졸 실업자는 쌓여가고 있다. 이젠 대학원을 나오고 석,박사 학위를 받아도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당당하게 사회구성원으로 일할 수 있다면 왜 목숨걸고 대학가려 하겠는가?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면 그만큼 개인과 사회적 비용 지출도 줄어들게 되어 국가 재정운영과 가게의 숨통이 트이게 된다. 또한 그 비용으로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만 받아도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회, 대학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만 진학하도록 하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보자.

 

o 남북통일, 지금 하지 않으면 어렵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통일은 이산가족의 상봉과 같은 과거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 가치와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통일이 밥먹여 주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 통일이 밥먹여 준다’. 통일이 되면 한반도의 경제력이 커지고 새로운 발전의 길이 열리며, 국제사회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통일은 우리에게 더 좋은 밥을 먹여주는 길임에 분명하다. 통일을 통해 한국사회는 한단계 비약할 수 있으며, 한반도를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나아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이 통일의 적기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항상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주변국가들의 세력 교체기가 한반도의 변화의 시기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추가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세력교체기가 통일의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지금 통일하지 않으면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으로 넘어가 통일의 길은 요원해지게 된다. 움츠려왔던 통일운동의 깃발을 다시 높이 들어야 한다.

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주변 4강과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데, 오직 남한만이 북한의 상황을 뒷짐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 이대로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제3자로 물러서 있을 것인가?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지금이 인도주의적 지원과 남북경협 확대 등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긴장완화와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o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

산업화 이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지만 인류의 행복이 그만큼 커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제성장과 복지정책만으로 인류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행복은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때만 지속가능하게 된다. 이제 경제발전을 위해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연생태계와 함께 존재하고 번영을 모색해야 한다.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지구생태계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생태계의 건강성 회복을 통해 인류의 행복을 꿈꾸기 위해 우리는 다음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생태계와 생물종다양성 보장, 기후변화 방지와 에너지문제 해결, 핵과 방사능 공포로부터 해방, 과학기술의 민주적 이용 등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o 2012년 대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앞에서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의 승리가 쉽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보여주었던 참담한 실정을 다시 5년 연장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 정권의 연장은 단순히 보수진영의 집권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양극화와 갈등의 심화, 남북간의 긴장고조, 국민경제의 몰락..., 더 이상 이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고 반드시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민주/진보진영의 집권 가능성은 있는가?’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면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면, 전체 진영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지지할 정당과 후보가 없다면 시대의 요구에 가까운 후보 선택해야 한다. 아직까지 민주진보진영을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할 대선후보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지지할 정당과 후보가 없다고 이번 대선을 포기하여서는 절대 안된다. 앞에서 제시한 시대의 요구, 새로운 진보의 가치에 보다 가까운 후보를 선택하고 힘을 모아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투표참여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실망하지 말고 차선 또는 차악이라도 선택하자. 이번 대선에서는 절대 강자는 없을 것이다. 결국 51대 49의 싸움이 될 것이다. 승리의 열쇠는 투표참여에 있다. 내가 지지할 최선의 후보와 정당이 없다면 차선을 선택하자. 차선도 없으면 차악이라도 선택하여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선거의 힘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보여주었듯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

 

최승국(생명운동가, 녹색연합 전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녹색연합에서 환경운동을 20여년 한 베테랑 시민운동가로써 나는 이번 411총선을 준비하면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을 알기에 시대정신이 내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낙마하여 본선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뿐만아니라 적지 않은 빚까지 지고 앞으로의 삶에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결국 내가 믿었던 시대정신은 기존 정치권의 권력다툼 속에서 진행된 황당한 공천과정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민주통합당의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총선 평가는 한마디로 ‘다 차려준 밥상도 못 찾아먹는 정당’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경선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숱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선 과정에서 시민운동가를 포함한 혁신적인 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경선제도의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이야기만 할까 한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내건 슬로건은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신인, 특히 혁신적인 인사들을 대거 발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바일 투표와 현장투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혁신적인 인사들의 무덤을 만들고 말았다. 수도권을 통털어 순수 시민운동가 출신은 경선에서 단 한명만이 살아남았고 이마저도 본선에서 탈락했다. 수도권에서 시민운동가 중 당선된 사람은 전략공천을 받은 이학영 후보 단 한명뿐이었다. 결국 국민참여 경선은 혁신적인 인사를 발탁하기는커녕 현역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모바일투표나 현장투표 모두 기존 조직을 이용한 동원선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장 투표 당일 승합차로 유권자를 실어나르는(?) 모습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가 출마했던 은평을 지역의 경우는 야권단일화 지역으로 묶여 민주통합당에서 막바지까지 공천을 미루다 경선을 3일 남겨놓고 5명을 무더기로 공천하여 경선에 몰아넣는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무책임의 극치이다. 애초 2배수로 후보를 압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후보들간의 경쟁력은 발휘될 수 없었고 동원선거로 씁쓸한 막을 내렸다. 그러니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결과였고,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에게 국회의원을 헌납하는 가슴아픈 상황을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된 경선을 통해 조금만 일찍 후보를 확정했더라면 은평을에서 승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은평을의 경우는 경선에 대한 어떤 전략도 기준도 없었으며 혁신의 의지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않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짚어보아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비용문제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면 당연히 돈을 쓸 수밖에 없지만 돌이켜보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각 후보별로 수천만원씩 낭비하게 만든 것이 민주통합당 경선방식이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특히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지출한 비용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해 보면 참 소모적인 선거를 치루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예비후보들이 반드시 내야할 비용은 예비후보 등록비 300만원, 민주통합당 후보등록 및 심사비 300만원, 당내 경선비 1,000-2,000만원에다 당내 경선을 통과한 경우 야권단일화경선비 1천만원...,이것은 반드시 내야할 돈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림없는 것이 선거이다. 예비후보 홍보물 1천만원, 여론조사비용(회당 3-4백만원), 현수막 설치비용 5백-1천만원, 사무실 운영비 및 선거사무원 인건비 2천5백만원..., 결국 제대로 선거운동을 하려면 예비후보 단계에서 최소 8천만원은 써야 한다는 것이다.

본선에 나가 15%이상 득표를 하면 선거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그 모든 돈을 자비나 후원금으로로 부담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될까? 나같이 돈없는 시민운동가 출신은 선거한번 치루면 빚더미에 안게 될 수밖에 없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경선 시기를 앞당겨야 하며, 혁신적인 인사들의 경우 전략공천(또는 단수공천)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경선과정은 현역의원들의 단수공천만이 눈에 띄었고 혁신인사들의 단수/전략공천은 손에 꼽을만큼 적었다.

선거가 끝나고도 문제는 여전하다. 당선된 사람들은 후원회를 유지할 수 있지만 낙선한 사람들은 후원회를 즉시 해산해야 한다.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 고통의 악순환을 낳고 그 과정에 불법정치자금 수수와 같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한 제도는 철저하게 가진자(현역 의원)만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회의 근본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승국(시민운동가/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은평을 예비후보)

Posted by 최승국

4.27 재보선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정치권은 그들만의 다툼으로 시끄럽다.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민심을 무섭게 받아들인다면서도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리싸움과 계파간의 대립만 눈에 들어온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과 야당 또한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에서 갈등과 무능력만 보여주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정치의 중심에 국민들은 없고 정치꾼들만 나서서 그들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서 국민들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4.27 보궐선거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4.27 선거는 재보궐 선거였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치뤄졌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전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들도 넘쳐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로 촉발된 원자력발전소의 안정성 문제와 신규원전 건설여부, 지난 겨울 한반도를 휩쓸고 간 구제역 문제, 4대강사업과 제2의 4대강사업이라 불리는 지천개발사업, 부실저축은행 문제, 전세대란을 포함한 부동산 문제, 그리고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복지논쟁에 이르기까지 선거 쟁점이 될 만한, 아니 선거쟁점이 되었어야 할 내용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에서는 이러한 쟁점들이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대결이 사라지고 인물론과 부정선거만이 부각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보궐선거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백번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원전문제와 관련한 정책대결과 논쟁은 이루어졌어야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일본 뿐만아니라 인류 전체의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 안전신화는 거품에 불과했음이 드러났고 전세계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원전확대정책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전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원전문제가 선거쟁점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한국의 상황과는 달리 비슷한 시기에 치루어진 독일과 일본의 선거상황은 판이하게 달랐다. 일본과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음에도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후인 3월27일 치뤄진 인구 1천70만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는 원전문제가 최대 쟁점이 되었고 원자력발전소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녹색당이 승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주지사를 배출할 예정이다. 비슷한 상황은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도 발생했다. 최근(4월 24일) 치뤄진 지방선거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후보가 도쿄도 세타가야구 구청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의 주요 공약은 ‘위험한 원전을 차례로 가동을 중단시켜 나가자’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번 4.27 선거를 통해 원전문제와 같은 주요 의제를 전면에 등장시키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냄은 물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아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고민과 행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담아내기 위해 시민사회에서 최근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라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기존 정치권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나라의 가치와 비전, 정책을 아래로부터 다양한 시민참여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정치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영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선거는 훨씬 역동성이 있고 선거의 결과도 국민들의 생활과 훨씬 밀접해 질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꿈꾸는 나라, 또는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다양한 모양으로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분출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잘 모아내는 것이 올바른 정치가 아닐까 한다. 그럼 정작 나 자신이 꿈꾸는 사회, 내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우리사회의 생명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끊어진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나라의 가장 큰 가치는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똑같이 존중하며 미물이라 하더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을 경계해 왔었다. 그러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경제성장과 부의 축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화되면서 야생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를 인간의 경제활동의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 이로 인해 생명을 그 자체로 존중해 오던 인류의 오래된 가치관과 문화가 점점 사라지게 되면서 생태계는 경제활동을 위한 약탈의 대상으로 전략하고 만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자연생태계는 물론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된 것이다. 이제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인 ‘모든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끊어졌던 생태계의 순환고리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익만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두 번째 가치는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에 있으며, 이와 더불어 획일화된 개발 방식이다. 모든 지역이 서울의 개발방식을 닮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나 정작 지역의 발전은커녕 수도권 쏠림 현상만 부추기고 지역의 인구는 날로 줄어들고 농촌의 몰락과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특성을 파괴하는 가속도를 내고 있다. 우스운 것은 소위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도 매한가지이다. 지금 세태는 전국 어디나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지어대고 기업을 나눠먹기식으로 배치하고, 지역의 특성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위험한 시설이라도 당장 눈앞에 이익이 될 것 같으면 공장과 기업을 마구잡이로 유치하는 것이 지역발전이라 여기고 있다. 멀쩡한 강을 파헤쳐 청계천과 같은 인공하천을 만드는 것이 발전이라 믿고 있으며, 천혜의 관광지에 자손만대에 위협이 되는 원자력 발전소라도 끌어들이는 것이 지역발전이라 여기고 있다. 이제 이러한 것이 발전이 아니라 지역과 나라를 망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방안을 내와야 한다.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이 지역은 관광도시로 만들고 저 지역은 산촌마을을 만들며, 또 어떤 곳은 교육도시와 전통문화의 도시로 차별화하여야 한다. 물론 산업도시와 행정도시도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와 더불어 교육과 채용의 과정에서도 지역의 발전을 고려한 결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세 번째 가치는 ‘미래세대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흔히들 ‘하나뿐인 지구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와 더불어 ‘지구는 미래세대로부터 빌려온 것’이라고도 한다. 이는 지구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의 것이며 미래세대를 위해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이웃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빌려도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자동차나 주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구는 어떠한가? 후손들로부터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지구, 즉 자연생태계를 우리는 마치 지금 세대에 모든 것을 탕진하기 위한 경쟁이라도 하듯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흠집을 내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주인에게 제대로 돌려줄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풍족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세대의 권리와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우리 모두가 꿈꾸어야 하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나는 위 세 가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세대가 당면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핵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신규 원자력(핵)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가동중인 원전은 단계적으로 중단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미 원전의 위험성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되었으며, 전세계는 핵발전이 아닌 재생가능에너지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핵없는 사회는 실현가능한 미래이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이러한 흐름에 함께 해야 한다.

 

둘째, 4대강사업 중단을 중단하고 다시 자연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미 완공단계에 와 있는 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생명을 죽이고 생태계의 순환고리를 끊는 대표적 사업이며, 다음세대를 권리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중단시키고 재자연화(복원)하는 일은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할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 사례를 독일의 이자강이나 스위스의 투어강에서 확인한 바 있다.

 

셋째, 큰 흐름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방안을 그리되 우선 해야할 것은 지역특성에 맞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이들 인재를 그 지역에서 고용하여 지역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의 몰락과 함께 지역 대학들이 함께 몰락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만을 찾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때 이름 있던 대학들도 지방대학이란 이유만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이 살고 지역에 있는 대학이 함께 사는 길은 각 대학별로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고 이들을 해당 지역의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채용토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들을 통해 지역발전 방안도 창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기존 정치권에만 그 역할을 맡겨 두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시민정치 운동이 필요한 이루가 여기에 있다.

 

최승국 / 시민운동가


Posted by 최승국

<여러분이 만약 야외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입니다. 여러분이 기자회견에서 특정한 구호가 적힌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유죄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사회자나 발언자가 마이크를 사용하였다면 함께 있는 사람들도 유죄로 처벌 받게 됩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이것이 2011년 4월 현재 대한민국 법정에서 내린 판결의 요지입니다. 어이가 없으시죠? 오늘도 광화문 주변을 포함한 수많은 곳에서 기자회견이 열릴텐데 집회신고를 하지 않고 기자회견에 참여하면 참여자 모두는 잠재적 범죄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유죄판결을 감수하고, 전과자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기자회견을 강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모든 기자회견을 할 때 집회신고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고치게 위해 싸우시겠습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2010년 4월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주최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마침내 4월 15일 선고 공판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20여명이 참석하였고 필자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기자회견 동안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퍼포먼스에 참여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사건에 대해 100%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이 사안이 유죄라면 이것은 완전히 코메디이다. 사법부는 오늘의 재판기록을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으로 기록할 것이다’ 라는게 재판을 받으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메디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재판부(재판장 : 이원범 판사)가 밝힌 판결 요지를 밝혀봅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옥외 집회란 천정이 있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에서 여는 집회’를 말한다.”

 

“위와 같은 집회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비록 기자회견을 표방하고 일부 이에 부합하는 진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기자회견의 개최목적과 전체적인 진행경과, 기자회견 이후 참석자들의 구체적인 행동 및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성 등을 실질적으로 관찰하여 동일 장소에 참여한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실질을 갖추어 있는 경우에는 집회에 해당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이 기본권 최대보장의 원칙을 위반하여 헌법상 표현의 자유 내지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좁게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기자회견에 참석한 환경단체 사람들은 4대강 반대라는 공통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고,.....(중략)...‘죽음의 삽질을 멈춰라’ 등의 내용이 기재된 10여개의 피켓과 깃발 등이 사용되었고 , 마이크와 스피커 등 방송장비가 동원되었다. ....,(중략).. (원더우먼 복장 등) 가면과 의상 등을 사용한 퍼포먼스가 행해졌으며...,(이하 생략)”


위의 판결 내용을 종합해보면 ‘야외 기자회견에서 공통의 목적을 피력하거나 피켓 등을 들고 있을 경우, 마이크 등의 방송장비를 이용할 경우 등’은 예외없이 집시법 위반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어제 개최한 기자회견은 과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예정되어 있는 기자회견을 경찰에서 고발하면 여러분은 범죄자가 되지 않을 확신이 있으신가요?

 

세상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모였으면 당연히 공통의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또한 효과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려면 피켓이나 현수막, 마이크 사용 등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불법이라뇨? 지금 우리가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 맞습니까? 이 판결대로라면 야외에서 진행되는 모든 기자회견은 불법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경찰과 검찰이 입맛대로 기소를 할 수 있고 기소가 되면 100%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확인드리면, 저는 이번 사건으로 집시법 위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물론 선고 유예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요) 이 판결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야외 기자회견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아님 기자회견마다 집회신고를 할까요?

 

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선고유예로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있을 똑같은 상황의 수많은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빼앗긴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정당한 시민운동의 활동을 탄압받지 않기 위해 제가 좀 피곤하더라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집시법을 개정하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래서 항소를 할 것입니다. 고등법원에서 만약 똑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면 대법원까지 갈 것입니다. 가서 내가 가진 표현의 자유와 시민운동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 필자는 같은 날 재판에서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도 유죄(벌금 50만원) 선고를 받았습니다만, 오늘은 사안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집시법 부분에 대한 의견만 밝혔습니다.  

최승국 / 시민운동가(녹색연합 전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오늘 ‘희망과 대안’ 출범식은 100여명의 보수집단의 행사진행 방해로 백낙청 선생의 인사말만 듣고 중간에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시민사회 대표자 100여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마치고 공식 출범식을 하는 것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방해한단 말인가? 보수세력들에게 희망과 대안의 출범이 그토록 두려움의 대상이었단 말인가?

 

                              <희망과 대안 출범식 장면>

오늘 희망과 대안 출범식을 방해한 행위는 우리 사회에 건강한 희망과 대안을 만들어 가려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움직임에 겁을 먹은 보수진영의 상식에 벗어난 행패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정당하게 진행하는 행사를 망쳤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같은 짓을 한 이유는 바로 희망과 대안이 출범하는 것이 보수진영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이같은 조급증과 불안은 결국 희망과 대안이 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전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또한 비록 오늘 출범식 일부를 망치긴 했지만 오히려 보수진영의 이러한 행위는 희망과 대안이 추구하는 일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출범식 행사장에 난입한 보수 세력들>

희망과 대안의 출발에 대해 아직까지 시민사회진영 내에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지는 조직, 그것도 정당이 아닌 시민운동 방식의 조직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는 결국 후보가 중요한데 희망과 대안이 후보를 내겠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정하지도, 또 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보수진영에서 보여준 모습은 희망과 대안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해준 셈이다. 시민운동 내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며, 희망과 대안이 추구하는 활동 방식이 충분히 우리사회에 울림을 주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 울림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진영이 스스로 자충수를 둔 것이다.

 

또한 오늘 출범식에서 있었던 일은 시민사회를 결집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보수 진영은 스스로 자신들의 입지를 쪼그라뜨리는 무리수를 둔 셈이다. 법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세력이 불법과 폭력으로 정당한 행사마저 방해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그들은 과연 계산에 넣었을까?

 

오늘 보수진영이 보여준 희망에 대안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좋은 정치, 더 좋은 정부를 만들고 우리사회의 희망을 찾고 참된 대안을 만드는 시민정치운동이 드디어 시작되었고 이 실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시민운동의 위기, 시민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대두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위기는 시민사회에만 있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위기의 징후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87년 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한국사회는 형식상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우리 사회가 바라는 개혁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단체제에 입각한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도, 재벌개혁도, 언론의 개혁도, 사회양극화의 해소도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있다. 민주화 세력의 열망을 업고 등장한 소위 ‘민주정부’들은 집권초기엔 각종 개혁 언어들을 늘어놓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 세력에 발목을 잡히고 그들이 내세웠던 개혁의 과제는 여지없이 실종되었다. 뿐만 아니라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무능력과 경제 불안의 장기화는 시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바로 우리사회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우리사회가 현재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한국사회가 가야할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80년대 분출되었던 수십만, 수백만 시민들의 열정은 ‘민주주의 쟁취’라는 단일 목표와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사회는 방향감각을 상실하였고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이제 우리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세워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과 내용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한 담론을 형성하는 논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사회는 사회발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이 억압되어 왔고 그렇기에 우리사회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담론형성의 기회가 없었다. 해방 후부터 고착된 분단이데올로기는 어떠한 진보 논쟁도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올가미로 탄압하였고 그 속에서 진지한 논쟁자체가 거부되었다. 80년대에 들어 운동세력들 속에서 치열한 이론 논쟁이 있었고 진보정당에 대한 시도도 이루어졌지만 올바른 논쟁이 억압된 상황에서의 논의는 대중성과 논리성을 획득하기 어려웠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성을 갖는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제도권 진출에 성공했고 이를 기반으로 조심스레 우리사회의 진보에 대한 논의들이 수면위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눈에 띄는 사회발전 논쟁의 중심에는 사민주의가 있다. 나는 이러한 논쟁과 담론이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대두되는 대부분의 논쟁이 과거의 논리, 낡은 진보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1세기는 생명의 시기, 환경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개념은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 보수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 진보진영의 논의에서도 생명이나 생태, 녹색의 이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인간을 위한 진보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만을 위한 진보가 정말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아무리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불에 이른다고 한들, 또 인간을 둘러싼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다고 한들 생명의 가치가 무시되고 인간이 발붙이고 살아야 할 자연환경, 생태계가 이미 그들의 생존을 허용하지 않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인간중심의 진보는 더 이상 진정한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인간만의 행복추구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가치가 존중되고 이들이 구성하는 생태계의 순환이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류의 행복도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여 나는 우리사회가 시작하는 담론의 형성을 위한 장을 다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녹색주의를 이야기하자.

* 이 글은 몇 년전에 작성한 것을 블로그에 옮겨 온 것입니다.


최승국 / 녹색연합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이제 그간의 시민운동, 환경운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운동을 다시 정립할 때가 되었다. 한계를 한계로 인정해 버린다면 더 이상 운동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도 엄청난 변화를 거쳐 왔으며 운동진영에 대한 사회의 요구 수준도 변화되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흐름에 안주한다면 시민운동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와 지지는 사라질 것이고 80년대를 풍미했던 급진주의 운동처럼 존재기반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 시기는 시민운동 스스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환골탈태를 통해 우리의 몫을 찾아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해 나가거나 아니면 시민운동을 대체할 다른 세력(아마 그것은 정치세력화나 자치운동이 중심이 될 것이고 또한 운동의 방식은 조직화되기보다 인터넷 등을 통한 활동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필자는 여전히 시민운동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되어지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 운동의 중심을 다시 세워야 함을 강조하며 몇 가지 방향을 고민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을 과거의 환경운동과 구별하여 녹색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녹색운동은 인간을 중심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와 생태계 그 자체의 순환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1) 한국사회의 방향성 제시

앞부분에서 우리사회가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현재와 같이 큰 그림 없이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곳을 쫓아다니며 하는 운동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비전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큰 그림을 우선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한 인간만을 위한 가치가 아닌 모든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가치인 <녹색주의> 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담론에는 국가(정부)와 정치권을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시장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역사회를 어떻게 녹색화 할 것인지, 전체 운동진영이 어떤 형식으로 녹색주의의 내용에 합의하고 각 진영간에 역할분담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제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각별히 주의하여 보아야 할 점은 사회의 근본을 바꾸는 방향을 제시하되 이것이 대중들에게 이해되고 상상할 수 있으며, 수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주의 운동은 늘 매력 있고 개량형의 조직은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만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대중들에게 수용되어지고 운동화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과 개발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대중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제분야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어떤 논리도 공허한 이상에 불과할 것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을 만들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녹색운동 진영만이 몫이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전체 진보진영들이 지혜를 모아야 하며 그러한 일을 하는데 심부름 역할을 녹색운동 진영이 할 수 있어야 한다.

 

2) 사회전체의 흐름을 바꾸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운동을 해야

그렇다면 녹색연합을 포함한 녹색운동 진영은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할 것인가? 지역과 단체의 성격에 따라 그 차이가 클 것으로 보지만 녹색연합이나 환경연합, 환경정의처럼 전국단위의 과제를 가지고 종합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필요한 공통분모가 있다. 우리들이 우선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녹색운동 진영에 무엇이 요구되는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자기 지역에서 일어나는 환경현안만 대응하고 몇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녹색사회는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사회 전체를 놓고, 또한 지역단위 전체를 놓고 무엇을 바꾸어야 잘못된 사회시스템의 핵심을 건드릴 수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국토계획일 수도 있고 도시기본계획일 수도 있고 시민들의 의식의 변화일 수도 있다. 때로는 자치단체장의 정책의지만으로도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이 모두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운동진영 속에서 녹색운동진영의 역할분담이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선 목표와 과제로 무엇을 설정해야 하는지를 다시 그려내야 한다. 물론 단체가 위치한 지역과 조직의 성격에 따라 운동의 개별 목표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조직이 하고 있는 운동이 그 요구사항과 어떻게 연계되는지는 분명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조직의 역량과 성격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해 활동을 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선순위에는 교육사업이나 회원사업이 포함될 수 있다.

3) 선행방식의 운동으로 전환, 의제의 재설정

앞 부분에서 이슈를 쫒아가는 운동, 즉 대응방식의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녹색사회, 녹색경제를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에 맞게 운동과제가 선정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운동 목표를 바탕으로 먼저 이슈를 만들어 내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 즉 선행방식의 운동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파악과 지역사회의 요구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부분이 핵심고리인지, 그리고 개발동맹 세력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개발사업의 첫 삽을 들기 전에 정책방향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와 아울러 우리가 바라는 대안세상(녹색세상)에 한 발짝씩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구체성 있는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화하기 위한 운동을 펴 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운동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과 방향으로 시민들을 설득하기 어렵고 자극성 있는 기사를 선호하는 언론을 활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약이 나쁜 줄 알면서 그것이 순간의 쾌락을 준다고 계속 즐길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이슈 대응방식이 갖는 한계를 알면서도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선행방식의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슈 대응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이슈를 정부나 개발론자들보다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며 운동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4) 녹색운동 세력화

자기대중의 부재가 갖는 문제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녹색운동 세력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는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녹색운동의 지지그룹을 분명히 해 내고 세력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녹색의 대의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10만의 세력이 있다면 개발동맹 세력과 녹색진영간의 힘의 균형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녹색운동의 세력화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녹색운동의 세력화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은 각 단체에 가입하고 있는 회원들을 보다 적극성을 갖고 활동하게 하거나 최소한 의사표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은 우선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지역에 기반하여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그나마 회원들의 참여하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중앙단위에서 전국의제를 갖고 활동하는 단체들의 경우는 회원을 단순한 지지그룹을 넘어 각 의제에 대한 행동 세력으로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거의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핵심의제로 삼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회원들을 조직하여 의사표현을 하지도 못했으며, 다른 국가들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사이버 시위 등에 회원들이 우선 참여할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제 각 단체에 가입된 회원을 우선 녹색운동 세력으로 묶어세우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 후원자로 분류되는 회원 모두가 운동세력화 될 수는 없을 것이며, 이 과제를 추진하다 보면 새롭게 어떤 사람들을 녹색운동 진영의 움직일 수 있는 세력으로 조직해야 할 것인가가 보다 분명해 질 것이다. 그리고 녹색연합의 예를 든다면 녹색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시민모임과 회원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의 경우 활동력이 일반회원보다 훨씬 높고 결속력도 높다. 어떤 모임은 참여자가 수백명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모임의 활동내용과 녹색운동 진영이 추구하는 활동을 일치시키는 것도 녹색운동 세력화의 빠른 길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역 단위의 (준)공동체 개념의 그룹을 만들거나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협과 같이 지역에서 대안문화를 만들어가는 조직이나 지역단위로 교육운동(전교조 뿐 아니라 대안교육을 추진하는 모임 등)을 진행하고 있는 모임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열정이 있는 회원들을 주민자치위원회와 같은 공조직에도 결합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의 풀뿌리 활동과 녹색운동을 연계하고 그들이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녹색진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운동역량 강화 측면에선 개별 회원을 조직하는 것보다 지역의 소규모 풀뿌리 조직들을 녹색운동과 연계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녹색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은 녹색운동 진영에서 구체성 있는 토대를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정치세력화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기초단위의 의회에서부터 광역의회, 그리고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긴 호흡으로 어떻게 정치세력화를 이룰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강조하는 것은 녹색인사들이 개별로 정치권에 편입(제도화) 되는 것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단 한명을 배출하더라도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시작하여야 하며, 정치권에 진출한 세력과 시민운동 진영에 있는 세력간의 결합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성 있는 입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개인으로 결합하였을 경우 환경부 장관이나 서울시장의 예에서 보듯 그것은 개개인의 정치권 진출에 지나지 않는다.

* 위 내용은 전체 원고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전문을 보시려면 첨부 파일을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최승국 / 녹색연합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어제 임진각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대북 삐라를 살포하려는 것을 일부 진보운동단체 회원들이 저지하는 가운데 몸싸움이 생기고 보수단체 회원이 멍키스패너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리고 가스총을 쏘는 등 불상사가 발생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들어 남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남 갈등이 표출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매우 안타깝다.

나는 보수단체들이 대북삐라를 보내는 것은 성숙되지 못한 모습이며, 결코 남북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나서서 이를 막기위해 몸싸움까지 벌이는 것도 또한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어제 있었던 임진강 사건은 일부 진보진영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구 보수진영의 기를 살려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본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21세기에 남측의 민간단체가 대북 선전용 삐라를 살포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북측에서 보낸 삐라에 대해 반감을 가졌듯이 남측에서 북측으로 보내는 삐라도 결코 성숙된 시민의식은 아니다. 그리고 남북문제 해결과 통일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대결구도만 강화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성숙된 시민들이라면 이러한 행위는 매우 치졸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사건은 이러한 국민들의 생각에 다른 신호를 줄 수 있다. 삐라 살포도 잘못되었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물리력으로 가로막으려 한 세력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보수 언론들이 옳다구나 하고 남남갈등으로 몰고가게 되면 결국 삐라를 살포하려는 세력들의 행위에 나름의 정당성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두면 대북단체들의 지나친 행위는 자연스레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행보는 스스로 쪼그라들 것이라 믿는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비난만 받게되면 그 일을 계속할 어떤 명분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 스스로도 알기때문에 자신들의 행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더 열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때 임진각 사건이 발생했다. 마치 '울고 싶은 아이 뺨을 때리는 격'이 되고 말았다. 

나도 현재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일하는 시민운동가이다. 그렇기에 어제 임진각에 갔던 진보단체 회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색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악화를 막기위해 무엇이든 하여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아무 행위나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어제 임진각에서의 행위는 분명 옳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듯이 우리와 반대 편에 있는 사람들도 표현의 자유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생각이 다르고, 상대방의 행위가 백번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물리력으로 막으려는 행위는 분명 옳지 못하다.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저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면 정부를 압박하여 그 행위를 멈추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스스로 중단할 수 밖에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옳다.

나의 이런 생각에 나를 알고 있는 분들 중 일부는 반대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 할 수 있다. 그 분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하지만 멀리 보았으면 한다. 조급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시민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지금 시기에 가장 큰 행보이다. 더 이상의 남남 갈등을 노출시키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대북관련 보수단체에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정말 유치찬란하고 19세기적 발상인 삐라 살포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신을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스총까지 동원하여 시민을 폭행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대가도 반드시 치뤄야 함을 인식하기 바란다.
 

<최승국>


 
Posted by 최승국

한국 경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공교롭게도 시민운동이 가장 심각한 어려움(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위기 극복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분명히 있음에도 지금 시민운동 진영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시민운동은 지금 세 가지 도전을 한꺼번에 받고 있다. 첫 번째는 시민운동의 가치와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이다. 시민운동은 서구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도 20년 이상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시민운동 진영을 탄압의 대상으로 삼고 핍박을 시작했다. 더구나 1992년 리우선언 이후 유엔은 물론 전 세계의 흐름인 Governance(협치) 기능마저 허물어버리고 말았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 도전은 경제위기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의 마음마저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건강한 사회를 위해 육성해야 할 시민운동을 돌아볼 여유마저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또한 경제위기는 경기부양을 위해 한반도대운하와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향한 끊임없는 유혹의 손길을 대통령과 정치권에 보내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결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한국사회는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시민운동이 져야 할 짐이 훨씬 무거워지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환경운동연합 사태로 인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사건은 환경운동연합 자체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진영 전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신뢰의 위기를 가져왔다. 시민운동을 지탱하는 근본축의 하나가 바로 도덕성에 기반한 신뢰인데 회계부정 사건은 비록 개인이나 한 단체의 잘못일지라도 전체 시민사회의 도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한 시민단체들 내부에서는 벌써 적지 않은 어려움이 현실화되고 있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사회전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을 후원해왔던 그룹들이 후원을 계속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하고 있으며, 일부 단체들은 재정압박에 얼마 되지 않는 활동가들의 활동비(급여)를 지급하지 못해 단체 규모를 줄이거나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기간만큼 활동가들에게 무급 휴가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위축은 결국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역할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못지않은 경제위기 상황에 빠져있는 한국사회 현실을 직면하면서도 시민운동진영의 목소리가 힘을 싣지 못하고 있고, 과거 외환위기 시기에 보여주었던 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들의 힘 있는 행동들도 나타날 기미가 없다.

 

물론 지금의 경제위기는 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본질의 차이가 있어 당시에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금 모으기’ 같은 국민운동이 제안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 역사상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나섰던 것은 정부도 정치인도, 돈 많은 사람들도 아닌 바로 평범한 시민 대중들이었다. 그들은 평소 온갖 핍박과 어려움을 받고 살아왔으면서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서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이런 움직임을 조직할 힘이 있는 것일까? 과거의 위기극복과는 방법론에서 분명 차이가 있어야겠지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시민들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답이 없음은 분명하다.

 

어제(11월 15일), 경기도 양평에서 <경제난국, 시민사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토론회가 있었다. 발제를 맡은 대구 가톨릭 대 이정옥 교수는 시민사회가 건강한 나라일수록 경제위기를 포함한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적으며 그렇지 않은 나라일수록 위기에 쉽게 빠져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스위스나 독일과 같이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버티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가 겪고 있는 이번 경제위기에도 별로 영향을 받고 있지 않으나 그렇지 못한 아일랜드의 경우 국가부도 상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대표 사례이다. 스위스와 같은 나라는 시민운동진영과 지역사회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 오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미국내에 시민운동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선거과정에 참여하고 온 이 교수의 전언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애써 키워온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인 시민운동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때문에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서도 제대로 된 처방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현재 시민사회, 특히 시민운동 진영이 직면한 도전은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특히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시민사회 진영이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 혁신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신뢰를 시민들과 함께하는 운동을 통해 되찾아 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자체 노력만으로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필요하겠지만 시민들이 시민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함께 지지를 끊임없이 보내주어야만 시민단체들이 그 힘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원하지 않지만 한국경제는 당분간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시민사회가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대안을 내놓든,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범국민 캠페인을 하든 하루빨리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제안되어야 한다. 대다수 시민들이 직장을 잃고, 영세 상인과 중소기업이 파산을 하고 나면 이를 극복하는데는 97년 외환위기 시기보다 훨씬 많은 희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10년 전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직장을 잃었고, 한국의 많은 국부는 헐값으로 외국에 매각되었다. 그렇지만 환란을 자초했던 세력들은 전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사회도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고통은 결국 대다수 죄없는 국민들이 나누어져야 했다. 이번에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기업들은 경영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며, 대기업과 건설업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서민들이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지키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 경제를 부동산 투기에 의한 거품 경제가 아니라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절실히 기대된다.

 

<최승국 / 녹색연합 사무처장>

Posted by 최승국
블로그를 시작한지 한달만에 10만명 이상의 방문자와 하나의 포스트에 5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기록도 세웠다. 그간 블로깅을 하는 재미를 제법 맛볼 수 있었지만 지난 주부터는 즐거움보다 고민이 더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한달 동안 블로깅을 하면서 이제 블로그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다. 방문자들이 좋아하는 글쓰기와 주제 등도 어느정도 파악한 듯 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방문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글쓰기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나름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도 다루었는데 내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블로깅을 하는 것이 꼭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문자가 급격히 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자신있었던 부분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작성하여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읽을거리가 있어야 꾸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재미도 있었다. 다음은 시민운동가로서 세상의 흐름을 읽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어느정도 갖고 있었기에 내가 관심갖는 분야의 글을 쉽게 쓸 수가 있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음세대재단의 도움으로 3일간 시민운동가 인터넷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였고 블로그 교육을 담당하셨던 분이 블로깅이 성명서나 보도자료보다 내 생각을 전달하는데 훨씬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블로그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한달여 동안 내가 터득한 것은, 파워블로그의 첫번째 조건은 '매력있는 제목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블로그 교육을 맡았던 강사분이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 분은 두번째 조건으로 이미지, 즉 '사진'을 들었는데 내 생각에는 사진보다는 제목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포스트를 채우고 있는 내용이다. 제목이 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그 내용이 별로라면 한 두번 방문한 사람은 다시는 그 사람의 블로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내 고민이 있다. 한달동안 1만명 이상이 방문한 포스트를 서너번 작성하였고 그간 수십건의 글을 올렸다. 내 나름에는 모든 글을 정성을 다해 작성하였지만 그 중 많은 글들은 아마 읽는 분을 실망시켰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방문자가 떨어지는 것이 혹시 이 때문이라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내가 작성한 글은 내가 키운 농작물이나 자식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글이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이 가슴아프다. 또한 나름 중요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동안 블로깅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될 것 같다. 혹 내가 작성한 글을 유심히 읽으신 분이나 제 블로그의 흐름을 훑어보신 분이 계시면 솔직한 비판과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한다. 블로그 초보자의 희망을 살려주시는 한마디를 기대한다.
Posted by 최승국
어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대표자 100여명이 모여 비상시국회의를 갖고 결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비상시국회의는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연대조직을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인다.

비상시국회의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볼때, 비상시국회의와 새로운 연대조직의 성공여부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주주의 후퇴, 경제파국 등의 문제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혹자는 지금 꾸려지는 연대기구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란 예측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반 이명박 전선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렇게 되기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당시는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 민주화를 외쳤고 단일한 전선, 단일한 투쟁대오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 보인다.

지금도 외형상 이명박 정권의 실정, 즉 민주주의 후퇴, 민생파탄, 경제위기 등에 맞서 총체적인 대응을 하여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반 이명박 전선을 만들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어보인다. 설령 반 이명박 전선을 만든다고 해도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지난 촛불시위과정에서 나왔던 '이명박 퇴진운동' 논쟁을 다시 할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분도 있겠지만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진보진영이 분열되고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은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폭넓은 연대, 촛불을 처음 들었던 중고생들과 중소기업인, 국민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중산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운동이 절실하다.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 함께 해야할 분명한 과제와 명분이 있다면 이에 동의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이 결합할 수 있을 때, 비상시국회의에 담긴 뜻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민주주의와 민생을 지키려는 모든 세력이 함께 결합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힘이 처음엔 느슨해 보이겠지만 점차 내공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당의 참여문제도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안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좀 곤란하다. 연대의 원칙을 정하고 이에 동의하는 세력은 모두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또한 어떤 연대조직이라도 그 속에 모든 운동과제를 담을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 촛불정국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광우병국민대책회도 중심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 와중에 춧불의 힘은 점차 약화되었다. 똑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와 민생,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동의할 수 있는 과제를 선정하여야 하며, 운동을 풀어가는 과정도 각 단위의 운동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연대운동은 각단위의 합보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직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과거의 많은 연대운동들은 초기에만 많은 단체들이 열심히 참여하다 좀 시간이 나면 몇 몇 단체의 책임으로 남고 나머지 단체들은 이름만 걸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곤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질 연대조직은 모든 참여조직과 참여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어내고 즐겁게 이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문만 무성하고 먹을것이 없는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운동을 이명박 정부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통 큰 연대, 폭 넓은 연대를 통해 80년대 민주화운동보다 더 큰 역사의 진전을 이루어 내야 한다.. 잘못가고 있는 역사를 바로세우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고 허물어져가는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길, 웃음과 희망을 잃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찾아주는 역할을 만들어 보자.


녹색연합 최승국



Posted by 최승국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지 8개월째를 맞는 지금 정부와 집권여당은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반대세력, 비판세력을 향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정치는 보복이 아니라 포용하는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정말 비판세력을 죽여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명박 정권이 비판세력 죽이기에 나선 까닭은 다 알다시피 촛불항쟁으로 인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마음에도 없는 거짓 사과를 두 번이나 해야 했으니 가슴에 사무친 한이 얼마나 큰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때문에 대통령은 시민사회와 불교계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을 경질하지 않고 비판세력을 탄압하는 친위부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비판의 목소리를 수렴하기보다 복수의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비판세력 죽이기는 촛불에 대한 대대적인 역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6월 28일 광화문 일대에서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고 평화집회를 하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살수차와 곤봉, 방패를 이용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탄압은 종교계의 가세로 일시 주춤하였지만 7월 5일 2차 100만 촛불문화제 이후 촛불이 약화되자 본격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 정권은 시민들로부터 광화문과 서울광장을 빼앗고 촛불을 든 시민이면 누구나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경찰의 폭력에 다친 사람이 1천명이 넘었고 50여명을 구속시키고 1,270을 불고속 입건시키고 이들에게 50만원에서 많게는 400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릴 계획이다. 정권의 탄압이 가히 80년대 군사독재 정권과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이 정권은 광우병 공포로부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들까지 소환하고 집으로 찾아가 겁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일명 예비군 부대까지 수사망을 넓혔고 불매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네티즌 대표까지 구속하고 수만명의 개인 이메일을 감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21세기 민주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20여년전 대학생활을 할 때의 시국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우리 역사가 20년은 뒷걸음질을 친 셈이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성숙한 시민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진행되고 있다.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야를 밝히는 횃불과 같은 역할을 해 왔으며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보전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시민운동이 마치 이적단체, 사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이라도 되는 듯이 몰아붙이며 직, 간접 탄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탄압은 진보성향을 띤 시민단체 대표자들에 대한 수배와 구속으로 시작되었다. 촛불집회를 지원하였던 광우병대책회의 실무책임자 다수에 대한 구속과 수배에 이어 진보연대와 참여연대에 대한 압수수색, 민주노총 간부들에 대한 대규모 구속영장 청구 등은 상식을 넘어서는 노골적인 비판세력 죽이기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활동을 마비시키기 위해 자금줄을 옥죄는 일에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까지 동원하여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내부 조사를 통해 자체 징계를 마친 사건을 트집잡아 환경연합에 대한 압수수색, 이를 빌미로 전체 시민단체의 도덕성에 대한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더니 급기야는 시민단체와 협력사업을 진행한 기업들을 검찰 특수부로 불러 조사를 하면서 겁박하여 자금줄을 죄는 행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는 누가 보아도 시민운동 죽이기, 비판세력 옥죄기임이 분명하다.

 

기업의 사회공헌과 기업과 시민단체의 협력활동은 유엔이 권장하는 행위이며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해 온 기업에 대해 칭찬하고 표창하던 분위기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한꺼번에 돌변하여 마치 범죄행위 다루듯 하니 세상이 거꾸로 가도 정말 심하게 가고 있다. 이는 정부, 지자체와 함께하는 협력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92년 브라질 리우회의에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합의와 지방의제 21을 채택한 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의 거버넌스는 시대의 큰 흐름이 되었다. 한국은 한나라당 김영삼 전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이었고 그 이후 줄곧 다양한 형태의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활동이 권장되어 왔고 이를 통해 많은 성과들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를 이제 와서 죄악시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를 이용해 정부와 협력사업을 진행한 시민단체 300여곳에 대한 감사원감사를 요구하고 나섰으니 이는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이제 시민사회 죽이기를 위해서는 국가적 망신거리조차 서슴지 않고 자행하겠다는 심사인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죽여야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는 보복이 아니라 다름을 포용하는데서 발전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포용하지 못한다면 결코 정권의 안정도 기대할 수 없다. 탄압은 더 강한 저항을 낳고 결국 정권과 생사를 건 투쟁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음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깨달아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나는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과 한나라당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본다. 국정감사를 시민단체를 죽이기 위한 공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국가의 발전은 없다. 더불이 한나라당과 정권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음을 더 늦지 않게 깨달았으면 한다. 임기를 마치든 아니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 이를 깨닫는다면 국민과 국가의 불행이 아닐 수없기 때문이다. 녹색연합을 포함한 시민단체에서 이번 국감을 중요하게 감시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osted by 최승국
파워블로거들이 보시기엔 별 것 아니겠지만 저에겐 대단한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다음세대재단의 도움으로 블로그를 새로 시작한 것이 9월 5일이었죠. 그전에도 1년 이상 블로그를 운영했지만 말 그대로 개점휴업이었는데 웹2.0과 블로그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받고 나서 바로 티스토리에 새로운 블로그를 만들었죠.

그리고 오늘이 꼭 한달이 되는 날입니다.

새로 블로그를 만들때 목표는 한달동안 방문자 5만명을 넘기는 것과 하나의 기사로 1만명의 히트를 기록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만든지 얼마안되어 1만5천명이 본 기사를 쓰게 되었고 지난주에는 5만명이 방문하고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10만명이 넘었어요.

블로그 하는 재미가 정말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물론 블로그에 빠져 다른 일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때론 몇 시간씩 컴 앞에 앉아 있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또 토론을 할 수있다니 블로깅은 정말 좋은 소통방식인 것 같아요. 또 글을 쓰놓고 방문자의 반응을 보다보면 내 글의 스타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는 것도 좋을 일이고요.

시민운동을 하는 나에게 블로그는 보다 많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수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에게 블로그 강의를 해 주신 분께서 이제 성명서나 보도자료 내지 말고 블로그를 통해 시민을 만나라고 했을때만해도 과연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한달에 10만명이 넘는 네티즌들과 이렇게 만나고 보니 그 말에 많은 긍정이 갑니다. 물론 블로깅과 보도자료는 다른 역할이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지만요.

제게 블로그를 알게 해 준 다음세대재단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직 블로그를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이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하기 바랍니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기도 하고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멋진 블로거들일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성과를 함께 축하해주세요.


Posted by 최승국
요즘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시민운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2008 시민/환경운동가 대회가 열렸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함께했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한판 흐드러지게 대동의 춤사위도 즐겼다.

강원도 횡성 청태산 자락에서 열린 시민운동가 대회!
시민운동가들이 올해의 시민운동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펼침막도 만들어졌다.

올해 시민운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일까?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 중 폐회식에서 채택된 한마디,

2008 시민운동은
'웃음'이다.

그렇다. 지금은 웃음을 잠시 잊고 지내고 있지만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에서,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여름을 뜨겁게 달구며 희망과 웃음으로 보냇었다.

그리고 여전히 시민운동은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고
또 시민운동가 스스로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웃음, 이는 행복의 다른 표인일게다.

시민운동가 모두 웃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과 함께 웃음을 나누어 갈 것이다.

시민운동 화이팅!!


9월 20일, 한주일을 마무리하며, 최승국
Posted by 최승국